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가고 싶은 새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무엇을 향해 날아가고 싶은 것일까. 우리가 소설 데미안을 통해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알을 깨야 된다는 이야기는 어떤 사람에게는 진부하게 들리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제부터 아브락삭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브락삭스
새는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간다. 그곳은 아브락삭스. 여전히 아브락삭스가 무엇인지, 어떤 신인지 모르겠다. 물과 불을 함께 뿜어내는 신일까? 상상해 본다. 아브락삭스 이미지는 피닉스, 즉 불사조가 자꾸 연상되지만 왠지 불하나만으로 약하다. 온몸을 불로 휘감았지만 입에서는 세상을 냉각시키는 얼음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상상해 볼까. 아브락삭스는 신의 이름인데 왜 자꾸 새가 연상되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새, 그 이미지가 계속 연속적으로 떠올라서인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알을 깨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의 알을 깨는것이 왜 고통스러울까. 지금까지 살아온 익숙한 것과 결별을 하는 게 두려운 것일까? 새로운 세상이 두려운것일까? 새로운 희망을 품고 날아가고 싶은데 자꾸 발목을 잡는 것은 무엇일까.
고뇌하는 싱클레어
싱클레어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그는 조현병 환자가 되어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받으며 살았을지 모른다. 매우 예민하지만 때로는 굉장히 거친듯한 느낌을 주는 싱클레어. 그는 데미안에 나오는 여러 표현들처럼 물과 불을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두 가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현대에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가슴을 찌르는 재앙이 되기도 한다. 물과 불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면 상황에 따라서 적절히 사용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혼돈을 느낀다면 자기 스스로 그 칼에 찔려서 죽게 될지도 모른다. 싱클레어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두 마음을 합치하는 데 성공한다. 그 이후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해서 생활을 잘했을까? 만약 현대사회에서 싱클레어처럼 고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물과 불을 구분하기
결국 물과 불이 섞이는 상황이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 불이 활활 타올라야 하는데 물을 뿌려서 꺼트리거나 물을 마셔야 되는데 불을 마시면 입에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지금 물을 사용해야 할지, 불을 사용해야할지 명확하게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 자신의 특성을 잘 알았다면 그 상황에 따라 사용하면 될 것인데 무엇이 문제일까. 지금까지 살면서 물과 불을 구분해서 사용해보지 않았기에 본인도 낯설고 주변 사람들도 상당히 낯설거지다. 그렇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본인이 물과 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었다는 것을 세상에 입증할 때가 된 것이다. 물론 두려움 때문에 망설일 것이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처음이 어려울 뿐이다. 첫 시작만 하면 그다음에는 술술 풀려간다. 첫 삽을 뜨는 순간 운명은 당신에게 축복을 내려줄 것이다. 믿어라. 분명 이뤄질 것이다.